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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가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무너질 때 교회는 반드시 왜곡된다.

1. 성경에서 신앙의 1차 현장은 언제나 ‘가정’이었다
성경은 교회를 말하기 전에 가정부터 설계합니다.
- 율법은 회당이 아니라 집에서 가르치라고 명령됩니다
→ 신명기 6장 - 초대교회는 성전보다 집에서 떡을 떼며 시작됩니다
→ 사도행전 2장 -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 불립니다
→ 고린도전서 3장
이 흐름을 보면 분명합니다.
가정은 교회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교회의 토양입니다.
2. 한국 기독교가 ‘교회와 예배’를 과잉 강조하게 된 이유
한국 교회가 교회·예배를 강조한 데에는 나름의 역사적 이유가 있습니다.
- 전쟁과 가난 속에서
→ 교회는 피난처였고 - 공동체가 해체된 사회에서
→ 교회는 유일한 공동체였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어느 순간 뒤집혔다는 점입니다.
가정이 신앙을 낳는 곳이 아니라
교회가 대신 떠맡아야 하는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 가정은 방치되고
- 예배는 대리화되며
- 부모는 신앙 교육의 주체가 아니라 외주자가 되었습니다
3.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와 예배는 반드시 왜곡된다
이건 냉정한 현실 진단입니다.
- 가정에서 사랑을 못 배운 사람은
→ 교회에서 인정에 중독되고 - 가정에서 대화가 없는 사람은
→ 설교를 소비하고 - 가정에서 책임을 안 배운 사람은
→ 신앙을 요구 목록으로 바꿉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생깁니다.
- 예배는 깊어지지 않고 커지고
- 공동체는 연결되지 않고 모이기만 하며
- 신앙은 성숙하지 않고 반복됩니다
예배가 문제가 아니라, 예배 이전의 삶이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4. 성경적 질서는 분명하다: 가정 → 교회 → 세상
성경은 질서를 뒤집지 않습니다.
- 가정: 신앙이 처음 숨 쉬는 자리
- 교회: 그 신앙을 확장하고 교정하는 자리
- 세상: 살아낸 신앙이 증언되는 자리
이 순서가 깨질 때,
- 교회는 가정을 대신하려 들고
- 예배는 삶을 대신하려 하며
- 결국 신앙은 현실을 떠난 의식이 됩니다
당신이 느낀 불편함은 정확히 이 지점에서 옵니다.
5. “각각의 가정이 온전해질 때 교회도 온전해진다”는 말의 의미
이 말은 이상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교회론입니다.
- 가정이 예배를 배우면
→ 교회 예배는 설명이 필요 없어지고 - 가정이 용서를 연습하면
→ 교회 갈등은 줄어들며 - 가정이 질문을 허용하면
→ 교회는 성숙해집니다
교회는 가정을 대체하는 곳이 아니라
가정에서 시작된 신앙이 서로 만나는 장소입니다.
맺는 말
예배는 하루의 사건이 아니라
한 주의 삶이 모여 드려지는 고백이고,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잘 살아낸 가정들이 서로 기대어 선 풍경이다.
지금 한국 기독교에 필요한 것은
예배를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다시 예배의 자리로 돌려놓는 용기입니다.
이 질문은
교회를 해체하려는 말이 아니라,
교회를 다시 살리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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