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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 대신 성찰을 가르치는 교회

— 신앙은 왜 생각하는 인간을 필요로 하는가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믿는 행위”로 이해한다.그러나 문제는 믿음이 때때로 사고의 중단으로 오해된다는 점이다.어떤 공동체에서는 질문보다 순종이 강조되고,고민보다 즉각적인 확신이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 결과 신앙은 인간을 더 깊은 존재로 성장시키기보다,단순히 정답을 반복하는 습관으로 축소될 위험에 놓인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는 맹목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성찰을 훈련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맹목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누군가가 내려준 답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자신의 내면과 삶을 깊이 돌아보지 않는 태도다.이러한 신앙은 겉으로는 안정적이고 단단해 보일 수 있다.하지만 외부의 충격과 현실의 고통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왜냐하면 자기 안에..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

— 신앙 공동체 안에서 질문의 철학적·신학적 의미Ⅰ. 서론현대 종교 공동체 안에서 “질문”은 종종 불편한 것으로 취급된다.많은 경우 신앙은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와 동일시되며, 질문은 믿음이 약한 상태 혹은 공동체 질서를 흔드는 요소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고찰해보면, 질문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가장 근원적인 움직임이다. 인간은 질문함으로써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며, 질문을 통해 진리에 접근한다.기독교 신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성경은 완성된 답만 기록한 책이 아니라 수많은 질문이 교차하는 기록이다. 욥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질문했고, 다윗은 시편에서 끊임없이 절규했으며, 예수 또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사고를 일깨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건..

건강한 교회!

오늘 예배에서 느낀것은교회는 한 사람 한사람을지식과 지혜를갖춘 지성인으로 만든는것이궁극적인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생각합니다. 그 생각, 꽤 본질을 찌릅니다.교회가 단지 “위로를 받는 공간”에서 멈춘다면,신앙은 쉽게 감정의 습관으로만 남게 되죠.하지만 성경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단순한 순종 기계로 부르지 않았습니다.“생각하는 존재”로 부르셨죠. 사도 바울도 믿음을 단순 감정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말은 결국 사고의 갱신을 뜻하니까요.신앙은 눈 감고 믿는 행위가 아니라,오히려 더 깊이 보고 더 정확히 판단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초기 기독교를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어요.당시 교회는 단순 예배당이 아니라 철학·윤리·공동체 교육의 중심이었습니다.중세 수도원은 지식을..

"원죄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는가?"

👉 원죄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는가?👉 지적 이해와 존재적 회개는 어디까지 연결되어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원죄 인식 → 죄인 고백 → 그리스도 고백 → 구원”이라는 구조를 보고 있어.그럼 질문은 이것이야: 원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는가? 1️⃣ 지적 이해와 존재적 깨달음은 다르다많은 사람이 창세기 3장의 사건을 신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해.아담, 대표성, 전가(imputation), 언약적 머리(headship) 이런 개념을 다 모를 수도 있어.그런데 중요한 건 이거야.성경은 “원죄 이론을 설명할 수 있는가”를 묻지 않아.대신 이렇게 묻지:너는 네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느냐?예수는 세리와 바리새인 비유에서신학적으로 정교한 기도를 칭찬하지 않았어.“하나님이..

카테고리 없음 2026.03.31

"믿음의 고백이 내가 전적으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할수 있는것이 안이라고!

그리고 믿음의 고백이 내가 전적으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할수 있는것이 아니라성령을 통해서 만 할수 있다고 생각해 이유는 믿음은 100% 로인데 사람은 불완전한존재로서 100%로의 믿음을 가질수 없기 때문이라 생각해 너의 생각은? 지금 네가 말한 건 굉장히 깊은 차원의 질문이야.이건 단순히 “구원 유지되냐 안 되냐”의 문제가 아니라믿음의 기원(origin of faith) 을 묻는 거거든. 1️⃣ 믿음은 인간이 만들어내는가?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해.“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 고린도전서 12:3이 구절은 네 주장과 정확히 연결돼.즉, 참된 고백은 인간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성령의 사역이라는 것.또한,“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

카테고리 없음 2026.03.31

"한번 구원 받은 사람은 어떤 죄를 지어도 천국 간다는 교리를 가른 치는데 난 안이라고 생각해 이유는"

1️⃣ 문제의 핵심: “한 번 구원은 영원한가?”이 교리는 보통“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혹은 “영원한 안전(Once Saved Always Saved)” 라고 불려.대표적으로 **John Calvin**의 개혁주의 전통에서 강하게 주장하지.반대로 Jacobus Arminius 전통에서는 구원의 탈락 가능성을 열어두어.2️⃣ 네가 근거로 든 본문: 마태복음 7:21–23이 장면은 마태복음 산상수훈의 결론부야.“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세 가지야.① “주여 주여”→ 신앙 고백은 있었다.→ 심지어 능력 행위(예언, 귀신 축출, 능력 행함)도 ..

카테고리 없음 2026.03.31

구원은 순간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구원은 순간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구원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그 순간, 우리는 중생하고,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며,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죄사함을 받는다.이 모든 변화는 한 순간에 일어나며,‘구원’은 이 모든 개념을 아우르는 하나의 선물이다.‘구원’, ‘중생’, ‘하나님의 자녀 됨’은서로 다른 개념이 아니다.이들은 모두 ‘구원’이라는 은혜 안에 포함되어 있다.우리가 은혜로, 아무 대가 없이 받은 단 하나는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입으로 시인하고,마음으로 믿음으로써 주어지는 구원이다.그러나 이 또한 우리의 능력이나 결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다.왜냐하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불완전한 존재가..

카테고리 없음 2026.03.07

"기독교는 교회보다 가정이 먼저다"

교회가 가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가정이 무너질 때 교회는 반드시 왜곡된다. 1. 성경에서 신앙의 1차 현장은 언제나 ‘가정’이었다성경은 교회를 말하기 전에 가정부터 설계합니다.율법은 회당이 아니라 집에서 가르치라고 명령됩니다→ 신명기 6장초대교회는 성전보다 집에서 떡을 떼며 시작됩니다→ 사도행전 2장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 불립니다→ 고린도전서 3장이 흐름을 보면 분명합니다.가정은 교회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교회의 토양입니다.2. 한국 기독교가 ‘교회와 예배’를 과잉 강조하게 된 이유한국 교회가 교회·예배를 강조한 데에는 나름의 역사적 이유가 있습니다.전쟁과 가난 속에서→ 교회는 피난처였고공동체가 해체된 사회에서→ 교회는 유일한 공동체였습니다문제는 이것이 어느 순간 뒤집혔다는 점입니다.가정이 신..

카테고리 없음 2026.01.24

"철학을 공부하지 않는 한국 기독교는 망한다"

신학과 세상 지식을 이어주는 다리가 철학이라는 인식은, 사실 기독교 사유의 가장 정통적인 계보에 속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한국 기독교가 철학을 경계하거나 배척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라,구조적 결과에 가깝습니다. 아래에서 분명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신학은 본래 철학과 함께 걸어온 학문이다기독교 신학은 태생부터 철학과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초대 교회부터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신학은 항상 “이해하려는 믿음(fides quaerens intellectum)”**이었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플라톤 철학으로 신앙을 사유화토마스 아퀴나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신학을 체계화쇠렌 키르케고르: 실존철학으로 신앙의 내면을 파고듦이들은 철학을 믿음을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믿음이 도망치지 않기 위해 반..

카테고리 없음 2026.01.24

왜 지혜로운 사람은 늘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일까

한 문장으로 먼저 말하면 이거야:지혜로운 사람은‘지금의 계산서’가 아니라‘시간의 결산서’를 보고 움직이기 때문이다.우리는 보통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로 손익을 판단해.그래서 지혜는 늘 손해처럼 보인다.이유를 단계별로 풀어보자.1️⃣ 우리는 ‘지금’만 보도록 훈련된 존재다현대 사회는 이렇게 묻는다:얼마 벌었어?이겼어, 졌어?손해야, 이득이야?이 질문들은 모두 즉시 결과를 기준으로 해.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질문이 다르다.“이 선택이1년 뒤에도,10년 뒤에도나와 사람을 살릴까?”그래서 지혜로운 선택은지금 기준표에선 마이너스로 찍힌다.2️⃣ 지혜는 ‘포기’를 선택할 줄 안다영리한 사람은 묻는다:“여기서 내가 더 얻을 수 있나?”지혜로운 사람은 묻는다:“여기서 더 얻으면내가 잃게 될 건 뭘까?”그래서 지혜로운 ..

카테고리 없음 2026.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