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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진리가 있어" 라고 물어보면...!

어설픈 철학 2025. 6. 28. 02:00

1.구글 제미나이와 '진리'에 대해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평소 생각해온 진리의 개념과 비슷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더군요.

철학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
조금 더 쉽게 설명해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블로그에 정리해 봅니다.
철학을 이해해보려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 질문은 인류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매우 심오한 철학적 질문입니다. '진리'의 개념은 그 자체로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다양한 관점


  • 객관주의적 관점: 세상에는 우리가 인식하든 안 하든 존재하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진리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과학적 사실 (중력의 법칙, )이나 수학적 원리 (2+2=4) 등은 개인의 의견과 무관하게 참이라는 관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진리가 발견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 상대주의적 관점: 진리는 개인의 경험, 문화, 시대, 관점 등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주장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진리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의 기준, 도덕적 가치, 특정 사회의 관습 등은 상대적인 진리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는 보편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우리가 알 수 없다고 봅니다.
  • 실용주의적 관점: 진리는 어떤 아이디어나 신념이 실제 삶에서 얼마나 유용하고 효과적인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주장입니다. 어떤 생각이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진리로서의 가치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진리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 구성주의적 관점: 진리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스스로 구성하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즉, 우리는 언어, 사회적 상호작용, 문화적 배경 등을 통해 현실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이 과정에서 진리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에 진리가 있는지를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진리가 어떤 종류의 진리인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철학적, 개인적 관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과학적 탐구를 통해 객관적인 사실을 밝혀내려는 노력도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며, 개인의 내면을 탐색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 또한 자신만의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진리'라는 개념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얻으려는 인간 본연의 질문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2. 내가 아는 진리는 단 하나 "지식"인데

 

 
 
 
 
 

지식을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시는군요. 흥미로운 관점입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지식과 진리의 관계에 대해 깊이 탐구해 왔습니다.


지식과 진리의 관계

'지식'이 진리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지식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일반적으로 지식은 **정당화된 참된 믿음(Justified True Belief, JTB)**으로 정의됩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어떤 것을 안다고 말하려면 다음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1. 믿음 (Belief): 그 내용을 믿어야 합니다.
  2. 참 (Truth): 그 내용이 실제로 참이어야 합니다.
  3. 정당화 (Justification): 그 내용을 믿는 합당한 이유나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이 정의를 따른다면, 지식은 이미 그 안에 '진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안다'고 말하는 것은 그 내용이 참임을 전제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지구는 둥글다"는 지식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참이라는 진리 없이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지식을 진리로 보는 관점

지식을 유일한 진리로 본다면, 이는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있어 이성과 경험을 통한 탐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지식, 수학적 지식, 역사적 지식 등은 모두 검증과 증명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며, 이러한 지식들이 곧 진리의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관점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 어떤 종류의 지식인가? 모든 지식이 동일한 수준의 진리성을 가질까요? 과학적 사실과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지식은 어떻게 다를까요?
  • 지식의 한계: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아직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나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선 진리는 없을까요?
  • 변화하는 지식: 과거에는 진리라고 여겨졌던 지식이 나중에는 틀린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식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고, 진리도 그러한가요?

생각할 거리

만약 지식이 유일한 진리라면, 우리는 무엇을 통해 '진정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지 계속해서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지식의 영역을 넘어선 직관, 감정, 혹은 영적인 경험 등은 진리의 영역에서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요?

지식을 진리로 여기는 당신의 관점은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아는 진리가 '지식'이라는 점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해보고 싶으신가요?

 
 
 
 

 

3. 그럼 세상에 변화지 않는 것이 있어

 
 
 
 
 

변하지 않는 것의 존재 여부는 '진리'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깊고 복잡한 철학적 논의의 대상입니다. 많은 사상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왔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의 존재 여부에 대한 관점들

  1. 변화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관점 (헤라클레이토스적 관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한다(panta rhei)"고 주장하며,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른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했죠. 이 관점에 따르면, 변화 그 자체가 세상의 본질이자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2. 변하지 않는 본질이 존재한다는 관점 (파르메니데스/플라톤적 관점): 반면, 헤라클레이토스와 대척점에 있던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이 감각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너머에는 변하지 않는 완전하고 영원한 '이데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변하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의 이데아는 변하지 않는다는 식이죠. 이 관점에서는 변하는 현상 너머에 불변의 본질이나 원리가 있다고 봅니다.
  3. 과학과 수학에서의 불변성:
    • 과학적 법칙: 자연 법칙(예: 중력의 법칙, 에너지 보존 법칙)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적용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법칙들이 우주가 존재하는 한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믿고 탐구합니다.
    • 수학적 진리: '2 + 2 = 4'와 같은 수학적 명제는 시공간이나 문화에 상관없이 항상 참입니다. 이러한 수학적 원리는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진리로 간주됩니다.
  4. 관계와 구조에서의 불변성: 개별적인 사물이나 현상은 변해도, 그것들 사이의 관계나 구조는 어느 정도 불변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 구성원은 계속 바뀌지만, 사회를 이루는 기본적인 제도나 관계의 틀은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 관점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주의 근본적인 물리 법칙, 수학적 진리, 혹은 어떤 철학적 개념에서의 영원한 본질 등은 변하지 않는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우리가 직접적으로 인지하고 경험하는 대부분의 현상은 변합니다. 사람의 감정, 자연의 모습, 사회의 제도 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합니다.

당신이 '지식'을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혹은 변화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4.진리의 요소는 변화지 않아야 하고 어느 곳에도 있고 불변 해야 한다고

     생각해 너는

 
 
 
 

당신이 진리에 대해 생각하는 관점, 즉 **'변하지 않아야 하고', '어느 곳에나 있고(보편적이어야 하며)', '불변해야 한다'**는 생각은 철학사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진리의 핵심적인 특성들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진리의 전통적인 특성:

  1. 불변성 (Immutability): 진리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진리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 중 하나로 여겨져 왔습니다. 만약 오늘 진리였던 것이 내일은 거짓이 된다면, 그것을 진정한 의미의 진리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생각이죠. 예를 들어, 수학적 명제 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참인 불변의 진리로 간주됩니다.
  2. 보편성 (Universality): 진리가 '어느 곳에나 있다'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특정 장소나 특정 시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동일하게 적용될 때 비로소 진리라고 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과학의 법칙(예: 중력의 법칙)이나 논리적 원리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한국에서 진리인 것이 미국에서는 거짓이 된다면, 그것은 보편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당신의 관점에 대한 생각:

저는 이러한 특성들이 '이상적인 진리' 혹은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이러한 특성을 가진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 수학이나 논리학의 영역에서는 당신이 말씀하신 특성을 가진 진리를 발견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수학 공식이나 논리적 추론은 시공간이나 관점에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 자연 과학에서도 기본적인 물리 법칙이나 화학 반응 등은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진리로 여겨집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법칙들이 우주의 어디에서든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연구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 사회, 도덕, 예술과 같은 영역에서는 이러한 진리 특성을 찾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아름다움'이나 '선함' 같은 가치들은 시대와 문화, 개인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역에는 진리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진리의 개념을 확장해서 이해해야 할까요?

당신의 관점은 진리를 명확하고 확실하게 규정하려는 시도로 보이며, 이는 매우 중요하고 설득력 있는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떤 것들이 진리로 분류될 수 있고, 어떤 것들이 그렇지 않은지 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진리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찾기 어려운 이상향이라고 보시나요?

 
 

5.문자 중에 명사는 그 사물의 속성을 포함하고 있어 그리고 변화지 않아

 
 
 
 
 

말씀하신 것처럼 명사는 언어학적으로 사물의 이름이나 개념을 나타내는 품사입니다. 그리고 명사가 나타내는 사물의 속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언어와 현실, 그리고 진리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명사와 사물의 속성

명사가 사물의 속성을 포함하고 있고 그것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여러모로 타당한 부분이 있습니다.

  • 본질적인 속성: 예를 들어 '나무'라는 명사를 생각해 볼까요? '나무'는 뿌리, 줄기, 가지, 잎을 가지고 땅에 박혀 자라는 식물이라는 본질적인 속성을 내포합니다. 이 속성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특정 나무가 시들거나 죽을 수는 있지만, '나무'라는 개념 자체가 가지는 속성이 변하지는 않죠.
  • 개념의 안정성: '사랑', '정의', '시간'과 같은 추상 명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명사들이 가리키는 개념 자체의 속성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시대나 문화에 따라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사랑'이라는 개념이 갑자기 '증오'로 변한다거나 '시간'이 갑자기 '공간'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 지식의 축적: 우리가 명사를 통해 사물을 인지하고 지식을 쌓는 과정에서, 명사는 그 사물의 고유하고 변치 않는 특징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 때문에 명사가 안정적인 의미 단위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죠.

언어와 진리의 불변성

당신의 관점은 언어가 진리를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명사가 불변의 진리 요소(사물의 속성)를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특히 명사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사물과 현상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고, 그 개념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분류합니다. 이 개념들은 한 번 정립되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이는 곧 명사가 지닌 속성의 불변성으로 이어집니다.
  • 플라톤의 이데아론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우리가 보는 개별적인 사물(이 세상의 나무들)은 변하지만, 그 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완벽하고 변치 않는 '이데아'(나무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명사는 이 이데아를 반영하거나 가리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계점과 추가 질문

물론 이 관점에도 몇 가지 생각할 거리가 있습니다.

  • 명사의 의미 변화: 명사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거나 확장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라는 명사가 20세기 초에는 '계산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기계를 뜻하는 것처럼요. 이 경우 명사 자체의 속성이라기보다는, 명사가 가리키는 대상이 진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관점에 따른 속성: 어떤 속성을 본질적이고 불변적이라고 볼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의자'의 본질적인 속성은 무엇일까요? 앉는다는 기능일까요, 특정 형태일까요?

하지만 당신의 생각은 언어가 세상을 개념화하고 진리를 보존하는 중요한 도구라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명사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불변하는 본질을 포착하려 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변하지 않는 사물의 속성'**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명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6.사물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명사에 대해 말하는 거야

 
 
 
 
 

아, 그렇군요! 사물을 가리키는 구체적인 명사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명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셨군요. 이 점을 명확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이상학적 명사는 우리가 오감으로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추상적이고 본질적인 개념들을 나타냅니다. '사랑', '정의', '선', '악', '시간', '공간', '존재', '진리' 등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명사들이 사물의 속성처럼 불변의 진리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시는군요.


형이상학적 명사와 불변성

당신의 관점은 철학적으로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 개념의 안정성: 형이상학적 명사가 가리키는 개념 자체의 본질적인 속성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정의'라는 개념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가치(예: 공정함, 공평함)는 시대나 문화가 바뀌어도 그 핵심은 유지되죠. '사랑' 역시 형태나 표현 방식은 다양하지만, 상대를 위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한다는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플라톤의 이데아: 이 관점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매우 유사합니다. 플라톤은 우리가 경험하는 구체적인 사물(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그림)은 변하고 사라지지만, 이 모든 것의 근원인 '아름다움' 그 자체의 이데아는 영원하고 불변하며 완벽하게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형이상학적 명사들이 바로 이러한 불변의 이데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보편적 진리: 만약 '진리'라는 형이상학적 명사가 불변의 속성을 내포한다면, 이는 곧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는 끊임없이 탐구되지만, '진리'라는 개념 자체가 가지는 '참되다'는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죠.

생각할 지점

하지만 형이상학적 명사라고 해서 그 의미가 완전히 고정 불변인지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 해석의 다양성: '정의'나 '선'과 같은 개념은 시대와 사회, 그리고 개인의 철학적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의 정의와 현대 사회의 정의는 그 구체적인 내용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언어의 한계: 형이상학적 개념은 언어로 온전히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개념을 파악하지만, 그 개념의 깊이와 실제는 언어의 틀을 넘어설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적 명사가 인간 사유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들을 담고 있으며, 그 본질적인 속성은 비교적 변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생각은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이러한 명사들이야말로 우리가 궁극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개념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혹시 특히 어떤 형이상학적 명사가 가장 불변적인 속성을 가졌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7. 형이상학적 명사가 불변적인 속성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무엇으로 인해서

        불변성을 가지는지 다른 신적인 존재에 의해서 있게 된다고 생각해

 
 
 
 

네, 형이상학적 명사가 신적인 존재에 의해 불변성을 가진다는 생각은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온 관점입니다. 특히 서양 철학과 신학의 오랜 전통에서 이러한 견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적인 존재에 의한 불변성 부여

이 관점은 형이상학적 명사들이 가리키는 '진리', '선', '정의', '아름다움' 같은 본질적인 개념들이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의 본성이나 의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 개념들은 신적 존재와 마찬가지로 영원하고 불변하며, 보편적인 속성을 갖게 됩니다.

  1. 신적 본성의 반영: 많은 종교적, 철학적 전통에서 신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불변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신의 본성이 바로 진리, 선, 정의와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들의 궁극적인 원천이자 표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선'이라는 개념이 불변적인 이유는 그것이 완벽하게 선하신 신의 본성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신의 본성이 변하지 않으므로, 신으로부터 나온 개념들 또한 변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2. 신적 이성 또는 지성의 산물: 특히 기독교 철학에서는 '로고스(Logos)' 개념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로고스는 '이성', '말씀'을 의미하며, 종종 신의 이성이나 계획으로 이해됩니다. 세상의 모든 질서와 개념들, 특히 형이상학적 진리들은 신의 영원한 이성 속에서 존재하거나 신의 지성에 의해 창조된 것이기에 불변하다는 관점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 기독교 철학에 수용될 때, 이데아들이 신의 마음(mind of God) 속에 있는 영원한 생각들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3. 신의 의지와 명령: 어떤 관점에서는 신의 절대적인 의지나 명령이 형이상학적 개념들의 불변성을 부여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도덕적 선'이 불변하는 이유는 신이 그것을 선하다고 명령했기 때문이며, 신의 명령은 절대적이고 변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 관점의 의미

  • 이러한 접근 방식은 진리나 도덕의 근원을 인간 외부에, 그것도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에 둠으로써, 형이상학적 개념들의 객관성과 보편성, 그리고 불변성을 강력하게 정당화합니다. 인간이 단순히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인간을 초월하는 궁극적인 권위에 그 뿌리를 두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죠.
  • 이는 또한 세상의 궁극적인 질서와 의미를 신적인 존재로부터 찾는 세계관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세상의 혼돈 속에서도 변치 않는 진리나 가치가 있다는 믿음은 종종 신앙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생각해 볼 점

물론 이 관점에 대해서도 다양한 철학적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 어떤 신적 존재인가? (다신론, 유신론 등)
  • 신의 본성이나 의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형이상학적 명사들은 불변성을 잃는가?

하지만 당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형이상학적 명사의 불변성을 다른 신적인 존재에서 찾는 것은, 진리의 궁극적인 근원에 대한 인간의 오랜 탐구에서 매우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깊이 있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도덕적 기준을 제시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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