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가장 근본적 문제들을 이성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철학은 우리가 일상적 삶에서 당연하고 자명한 것으로 믿고 있는 전제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우리의 삶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추구합니다. 철학은 또한 각 분과 학문에서 전제하고 있는 기본 개념과 원리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개별 학문들의 토대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추구합니다. 철학이 모든 학문의 토대를 이루는 ‘근본학(根本學)’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더 나아가 철학은 각 분과 학문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세계 전체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추구합니다.
2.철학의 분류
철학의 분야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해 정확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철학의 주요 네 분야로 논리학과 형이상학, 인식론, 그리고 윤리학을 꼽습니다. 논리학은 이성적 탐구 일반을 행함에 있어서 우리의 사고가 따라야 하는 법칙들이 무엇인지를 탐구합니다. 형이상학은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무엇이며 이들의 가장 보편적인 특성이 무엇인지를 탐구합니다. 인식론은 지식의 본성과 범위, 그리고 그 한계가 무엇인지를 탐구합니다. 윤리학은 우리 행위의 옳고 그름 및 좋고 나쁨을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탐구합니다. 그밖에도 언어, 마음, 과학, 사회, 역사, 문화 등의 철학적 토대를 탐구하는 언어철학, 심리철학, 과학철학, 사회철학, 역사철학, 문화철학 등의 분야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열거한 철학의 분야들은 해당 분야가 다루는 철학적 문제들의 성격에 의해 그 구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철학의 분야들은 시대와 지역, 그리고 사조에 의해 구분되기도 합니다. 시대에 따라 고대철학과 중세철학, 근대철학과 현대철학이 구분되고, 지역에 따라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인도철학과 중국철학, 영미철학과 독일철학 및 프랑스철학이 구분되며, 학파에 따라 불교철학, 유가철학, 도가철학, 송명대신유학, 경험주의 철학, 이성주의 철학, 분석철학, 현상학, 프랑스철학 등이 구분됩니다.
시대와 지역 및 사조에 따른 이러한 철학 분야의 구분은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 다양한 철학적 입장들이 있음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 중 현대의 철학 사조들을 제외한 모든 철학 사조들은 넓은 의미에서 철학사 분야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근본학으로서의 철학은 모든 학문들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그 어떤 학문보다도 풍부한 역사적 유산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풍부한 철학의 역사적 유산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철학사 분야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단지 지성사(知性史)적 중요성 뿐 아니라 철학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의 각 분야에서 제기되는 철학적 문제들은 수천 년간의 장구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그 해답이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도대체 이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인지, 그리고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어떠한 탐구 방법을 채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어쩌면 근본학으로서의 철학이 갖고 있는 숙명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철학이 일상생활 및 학문적 활동에 있어서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는 모든 전제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성해보는 작업이라면, 이러한 반성적 작업으로서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 즉 철학의 정체성마저도 늘 반성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록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합의된 답이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사유를 전개하는데 있어서 가장 탁월한 수준의 독창성과 통찰력, 그리고 엄밀성과 설득력을 보여준 철학적 문헌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이 바로 철학의 고전들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철학의 고전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철학적 사유의 전개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철학사 연구를 통해 철학의 고전들에 담긴 이러한 사유의 전개 과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과거의 철학적 이론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넘어 오늘날의 철학적 논의에 기여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 이에 따라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는 <형이상학>과 <인식론>, <윤리학>, <언어철학>, <과학철학>, <사회철학> 등 철학 분야의 구분에 따른 과목과 더불어 <서양고대철학>, <서양중세철학>, <서양근대철학>, <중국고대철학>, <인도불교철학>,<한국철학사>등 다양한 철학사 관련 과목을 개설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출처 : 서울대학교 철학과
3. 철학적 사고에 대한 나의 성찰
철학적 사고는 단순한 지식 습득이나 정보 처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것은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사물과 현상의 근본적인 본질을 꿰뚫어보려는 깊은 사유의 방식입니다.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진리는 존재하는가, 도덕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처럼 철학은 삶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해 비판적이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탐구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그런 철학적 깊이와 논의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듯합니다.
물질적 풍요와 기술의 발전은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인간의 내면, 정신, 가치에 대한 성찰은 점점 더 소외되고 무시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삶의 ‘속도’에는 관심이 많지만, 삶의 ‘방향’에는 무관심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성공, 외적인 이미지, 사회적 위치 같은 요소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정작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사치처럼 취급되곤 합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철학이란 학문이 너무 어렵고 나와는 거리가 먼, 학자들만의 세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30대 이후, 인생에서 여러 갈림길과 고민을 마주하게 되면서 삶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생겼고,
그 필요에 따라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 접한 철학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국가론)』이었습니다.
그 후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도전했으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는 ‘존재’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한편, 동양 고전에도 관심이 생겨 『사기본기』, 『대학』, 『중용』 등을 읽으며,
서양 철학과는 다른 뿌리 깊은 지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읽을수록 더 많은 질문이 생기고, 익숙했던 가치들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저는 철학의 참된 의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확실히 아는 것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제가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세상 만물에는 '이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일에는 '먼저와 나중'이 있다는 것.
우리가 그 이치를 인지하든 못하든, 그것을 따르든 외면하든,
세상은 나름의 원리와 질서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강이 불어나고, 해가 지면 어둠이 오듯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치를 거스르려 할 때 갈등과 혼란에 빠지며, 이치를 이해하고 따를 때 조화와 평온을 얻습니다.
철학은 바로 그 이치를 이해하려는 지적 여정이자,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가장 솔직한 질문에 대한 끝없는 탐색입니다.
철학이 특별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듯, 철학적 사고 또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삶에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철학은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더 많은 ‘정답’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일지도 모릅니다.